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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릿』을 읽고, 아이의 노력을 바라보는 마음
아이의 공부를 지켜보다 보면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해가 빠른 아이가 공부를 잘할까, 아니면 조금 느리더라도 꾸준히 노력하는 아이가 결국 더 성장할까.
앤절라 더크워스의 『그릿』은 바로 이 질문을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시절, 머리가 좋은 아이가 반드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이러한 의문은 심리학 연구로 이어졌고, 이후 2013년 TED 강연과 『그릿』을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오래도록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힘, 끈기
저자가 말하는 그릿(Grit)은 장기적인 목표를 향한 열정과 끈기입니다. 순간적으로 의욕을 내는 것을 넘어, 어려움과 실패를 겪어도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 연구입니다. 신입 생도들은 입학 직후 ‘비스트 배럭스’라는 혹독한 여름 훈련을 받습니다. 연구에서는 기존의 종합 평가 점수보다 그릿 점수가 이 훈련을 끝까지 마칠 사람을 더 잘 예측했습니다.
철자 맞히기 대회에 참가한 아이들을 살펴본 연구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릿이 높은 아이들은 집중적인 연습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고, 이러한 연습은 더 좋은 대회 성적과 연결됐습니다.
이 사례들을 읽으며, 눈앞에 드러나는 능력만으로 아이의 가능성을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취의 과정에는 노력이 두 번 들어간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다음의 공식입니다.
재능 × 노력 = 기술
기술 × 노력 = 성취
노력이 두 번 등장한다는 점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재능을 기술로 발전시키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고, 그렇게 얻은 기술을 실제 성취로 이어가는 데도 다시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 공식은 아이를 바라보는 제 시선도 돌아보게 했습니다. 문제를 얼마나 빨리 푸는지, 몇 개를 맞혔는지에 관심을 두느라 아이가 그 과정에서 들인 노력을 충분히 살펴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어제 풀지 못한 문제를 오늘 다시 펼쳐 보는 일, 모르는 부분을 질문하는 일, 틀린 이유를 찾아 다른 방법으로 시도하는 일. 이런 작은 행동들도 성장의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적용-그릿을 길러주는 양육방식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은 수학 문제집만 펴면 한숨부터 쉬었습니다. "왜 이렇게 진득하게 못하냐"는 잔소리를 반복하다가, 『그릿』을 읽고 방식을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하루 분량을 두 장에서 한쪽으로 줄였습니다. 대신 매일 빠짐없이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틀린 문제는 다시 풀게 하는 대신 "어디서 막혔어?"라고 물었고, 아이가 설명하는 동안 저는 끝까지 들었습니다.
문제집 푸는 양에 집착하지 않고,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훈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되어서 느끼는 것은 기다리는 것은 정말 힘이 들지만, 그것만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구나 라는 생각을 정말 매일매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현재도 아이가 문제를 잘 풀거나 기분 좋게 숙제를 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어려운 문제 앞에서 바로 모르겠다고 연필을 놔버리던 아이가 이제는 "잠깐만, 잠깐만"을 외칠 줄 아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끈기는 다그쳐서 생기는 게 아니라, 곁에서 함께 버텨줄 때 자란다는 걸 배웠습니다.
책을 보며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칭찬 역시 바꿔보았습니다.
-오늘도 다 맞았네(X) → 오늘도 스스로 끝까지 해냈네
-넌 똑똑해(X) → 막혀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생각해 보려는 노력이 대견해
-수고했다(X) → 어제보다 오늘 더 몰입해서 집중하는 시간이 늘었어!
왜 하는지 알면 버틸 수 있다 — '목적의식'을 일에 적용해 보니
『그릿』에서 저자는 그릿을 키우는 요소 중 하나로 목적의식을 꼽습니다. 여기서 목적의식이란 내가 하는 일이 나를 넘어 다른 사람에게 의미가 있다는 감각입니다. 저자가 만난 그릿이 높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책에는 유명한 벽돌공 우화가 나옵니다. 무엇을 하냐는 질문에 첫 번째 벽돌공은 "벽돌을 쌓고 있다", 두 번째는 "교회를 짓고 있다", 세 번째는 "신의 집을 짓고 있다"라고 답합니다. 같은 일을 해도 그 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생업, 경력, 소명으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구분을 연구한 에이미 브제스니에프스키의 말을 빌려, 소명은 특별한 직업에 있는 게 아니라 같은 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조금씩 바꿔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설명합니다. 애덤 그랜트의 연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대학 장학금 모금 전화를 거는 직원들이 실제 장학금을 받은 학생을 잠깐 만난 것만으로도 이후 모금 실적이 크게 올랐다고 합니다.
이 장을 읽으며 제 일을 돌아봤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매주 고객 문의 데이터를 정리해 보고서를 만듭니다. 5년째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솔직히 첫 번째 벽돌공에 가까웠습니다. 엑셀 칸을 채우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바꿔봤습니다. 보고서를 받는 고객지원팀에 찾아가, 이 자료가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물었습니다. 제가 정리한 불만 유형 덕분에 응답 매뉴얼이 바뀌었고, 같은 문의가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뒤로는 숫자만 정리하던 보고서 끝에 "이번 주 고객이 가장 불편해한 점" 한 줄을 직접 써서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업무가 바뀐 건 아니지만, 이 일이 누군가의 불편을 줄인다는 걸 알고 나니 월요일 아침이 조금 덜 무거워졌습니다.
물론 모든 일에서 소명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은 조금 이상적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일 자체를 바꾸기 어렵다면 일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꿔보라는 저자의 제안은, 지친 직장인에게 현실적인 출발점이 되어줬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야 그동안 재능 탓을 하며 너무 쉽게 내려놓았던 것들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나는 원래 이런 거 못해라는 말을 자주 하거나 시작은 많이 했는데 끝까지 간 게 별로 없는 저 같은 분들은 한 번씩 읽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별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