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티용 효과: 돈이 흘러가는 순서가 격차를 만든다
인플레이션이 왜 생기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물가가 오르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건 돈이 어디에 먼저 닿느냐입니다.
칸티용 효과(Cantillon Effect)란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할 때 그 돈이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전달되지 않고, 자산을 이미 보유한 사람들에게 먼저 흘러 들어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부동산이나 주식을 가진 사람이 돈의 첫 번째 수혜자가 되고, 월급쟁이는 맨 마지막에 조금 올라간 임금을 받게 된다는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이 구조를 체감한 건 금리 인상기였습니다. 기준금리가 오르자 주변 지인들의 대출 이자 부담은 늘어났고, 이미 자산이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높아진 금리 덕분에 예금과 채권 수익을 챙겼습니다. 같은 금리 변화가 사람마다 정반대의 결과를 냈습니다. 이게 칸티용 효과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NH투자증권 세대연구소가 2025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0.1% 가구의 순자산은 1년 새 약 10억 원 이상 증가해 12%에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출처: NH투자증권 세대연구소). 반면 중위권 가구의 자산 증가는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 격차가 개인의 노력 차이가 아니라 시스템의 구조적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이 구조에서 어떻게 대응하는 게 맞을까. 이에 대해 견해가 엇갈립니다.
- 자산을 최대한 빨리 확보해 칸티용 효과의 수혜 쪽에 서야 한다는 시각
- 무리한 레버리지(leverage, 부채를 이용한 투자 자산 확대)는 금리 변동에 취약하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시각
- 부동산보다 유동성이 높은 ETF나 주식으로 분산 투자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시각
저는 세 번째 입장에 더 가까운 편입니다. 자산을 보유해야 한다는 논리 자체는 동의하지만, 보유 자금 대부분이 묶이는 부동산 투자는 제 현재 상황에서 자산 유동성을 지나치게 낮춘다는 판단 에서입니다. 지금은 주식, ETF 중심으로 시드머니를 쌓으면서 기회를 보고 있습니다.
문화자본: 압구정 아파트가 비싼 진짜 이유
부동산 가격이 수익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례가 있습니다. 월세 수익도 거의 나오지 않는 오래된 구축 아파트가, 임대 수익이 꾸준한 경기도 신축 상가보다 비싼 경우가 그렇습니다. 처음에 이 현상을 접했을 때 솔직히 납득이 안 됐습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자본을 단순히 돈의 형태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한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이란 특정 공간과 집단이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한 생활양식, 네트워크, 사회적 맥락의 총합을 뜻합니다. 압구정 아파트를 구입한다는 것은 콘크리트 구조물을 사는 게 아니라, 그 동네의 학군, 이웃의 직업군, 병원 수준, 커뮤니티 시설, 그리고 거주지를 밝혔을 때 따라붙는 사회적 평가를 함께 사는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여기에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도 더해집니다. 아비투스란 특정 집단이 공유하는 취향, 습관, 감각이 몸에 밴 상태를 의미합니다. 비벌리힐스가 교통이나 전망이 더 좋은 다른 지역보다 비싼 이유도, 그곳에 오랫동안 거주해 온 할리우드 스타와 법조·의료 엘리트들이 형성한 아비투스가 가격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 논리는 수익률 계산보다 훨씬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부의 세습도 이 맥락에서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통장 잔액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교육 환경, 주거 환경, 인간관계, 문화적 감각까지 통째로 이전하는 것이 진정한 부의 세습이라는 시각입니다. 경기도 신축 상가는 임대 수익은 줄 수 있어도 이 아비투스는 전달하지 못한다는 거죠.
공급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 인구는 감소 추세에 있지만, 핵심 지역 주택 공급은 사실상 물리적 한계에 다다른 상황입니다(출처: 통계청). 공급이 제한된 곳에서 문화자본까지 축적되어 있다면, 가격 방향성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편입니다.
다만 저는 이 논리가 "그러니까 지금 당장 사야 한다"는 결론으로 직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압구정 아파트의 가치가 앞으로도 높게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과, 그것이 지금 저에게 맞는 선택인가는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레버리지 없이 살 수 없다면, 금리 사이클을 잘못 만날 경우 오히려 자산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투자견해
부동산은 장기적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산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부동산을 중요한 투자 수단으로 활용해 왔고, 저 역시 그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 제가 부동산 투자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시장 전망이 부정적이어서가 아니라, 제 자금 구조와 투자 여건을 고려했을 때 아직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투자는 일반적으로 상당한 규모의 자금이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대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자산의 유동성이 낮아지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특히 금리와 경기 상황에 따라 투자 수익률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저는 주식과 ETF 등 비교적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중심으로 투자하며 시드머니를 꾸준히 늘려가고 있습니다. 충분한 현금 흐름과 투자 여력을 확보한 뒤 더 좋은 기회가 왔을 때 부동산 투자도 검토할 계획입니다. 당분간은 무리한 대출을 통한 투자보다는 자산을 안정적으로 성장시키고, 언제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유연한 투자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