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식 앱을 켤 때마다 코스피 숫자가 올라 있으면 기분이 좋다가도, 환율 창을 함께 보는 순간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드신 적 없으셨습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코스피가 2,800을 돌파했다는 소식에 잠깐 흥분했다가,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훌쩍 넘어 있는 걸 확인하고는 '이게 정상인가' 싶었습니다. 주가는 오르는데 환율도 오르고 금리도 오른다면, 그 상승이 얼마나 견고한 것인지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리밸런싱
보통 코스피가 강세를 보이면 원화도 함께 강세를 보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외국인 자금이 국내 주식을 사들이면서 달러를 원화로 바꾸기 때문에 환율이 내려가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시장은 그 공식이 완전히 뒤집혀 있습니다.
이 역설의 핵심에는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 리밸런싱(Portfolio Rebalancing) 중단이 있습니다. 리밸런싱이란 목표 자산 배분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비중이 커진 자산은 팔고 줄어든 자산은 사들이는 운용 원칙입니다. 국민연금은 지난 38년간 이 원칙을 지켜왔는데, 2026년 1월 이 규칙을 사실상 유예 해 버렸습니다.
원래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목표 비중은 전체 자산의 14.4%였고, 장기적으로는 13%까지 줄일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추정치는 30%에 달합니다. 전체 자산 약 1,800조 원 가운데 555조 원어치를 국내 주식으로 들고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원칙 기준인 260조 원과 비교하면 약 290조 원을 초과 보유 중인 셈입니다.
국민연금의 운용 원칙 변화를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기존 원칙: 국내 주식 비중 14.4%, 장기 목표 13%로 축소
- 2026년 1월 26일 1차 조치: 비중을 14.9%로 상향, 리밸런싱 한시 유예
- 2026년 5월 28일 2차 조치: 비중을 20.8%로 재상향, 추가 허용치(+알파) 비공개 전환
- 현재 추정 실제 보유 비중: 약 30%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명분의 변화입니다. 1월에는 환율 안정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습니까. 주가가 인위적으로 부양되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기대보다 너무 비싸다"며 상반기에만 103조 원어치를 순매도하고 빠져나갔습니다. 외국인 순매도 103조 원은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출처: 한국거래소). 달러 수요가 폭발하면서 환율은 오히려 1,550원에 육박하게 됐으니, 명분 자체가 무너진 셈입니다.
게다가 이 결정 과정의 회의록은 4년간 봉인, 즉 2030년까지 비공개입니다. 우리 노후 자산이 어떤 근거로 운용되는지 당사자인 국민이 알 수 없는 구조가 됐다는 점은 상당히 불편합니다.
경고 신호
제가 직접 당혹스러웠던 것은 세 시장이 동시에 어긋나는 장면이었습니다. 주가는 오르는데 환율도 오르고, 국채 금리마저 치솟는 상황은 정상적인 강세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그림입니다.
10년물 국고채 수익률이 4.2%를 돌파했습니다. 국고채 수익률이란 정부가 발행한 채권에 투자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연간 이자율로, 이 수치가 오른다는 것은 채권 가격이 내려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불과 1년 전 2.7%였던 것이 4.2%까지 오른 것은 이례적인 수준입니다. 채권 시장에서 가장 큰 수요처인 국민연금이 주식에 자금을 몰아넣으면서 채권을 충분히 사주지 못하게 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금리가 이렇게 빠르게 오르면 파급 효과는 주식 시장 밖에서 먼저 나타납니다. 기업의 조달 비용이 올라가면 투자와 고용이 줄고, 가계의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면 소비가 위축됩니다. 제 경험상 이런 흐름은 체감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실물에서 빠지기 시작하면 결국 기업 실적을 통해 주가에도 부메랑이 됩니다.
일본의 사례가 여기서 중요한 참고점이 됩니다. 1990년대 초 일본 정부는 연기금에 주식 매도를 금지하고 추가 매수를 지시했습니다. 그 결과 주가가 단기적으로 40% 가까이 상승했지만, 외국인이 대거 매도하고 빠져나가면서 연기금이 손실을 입었고 이후 장기 침체의 씨앗이 됐습니다. 한국의 현재 상황이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구조적 유사성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한국은행도 금융안정 리포트를 통해 자산 집중과 변동성 확대 가능성을 꾸준히 경고 해왔습니다(출처: 한국은행). 주가만 높다고 시장이 건강한 게 아니라는 경고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투자전략
그렇다고 저는 코스피를 손 놓고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려스러운 구조 뒤에 실질적인 실적 기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SK하이닉스는 현재도 사상 최대 수준의 실적을 이어가고 있고, 회사 스스로 AI용 메모리 수요가 생산능력(Capacity)을 초과하고 있다고 밝힐 정도입니다. 여기서 HBM(High Bandwidth Memory)이란 여러 개의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쌓아 AI 연산 장치가 요구하는 초고속 데이터 처리를 가능하게 하는 차세대 메모리입니다. AI 서버 한 대에 들어가는 HBM 용량이 증가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HBM 대응이 다소 늦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메모리 가격 상승과 파운드리 수주 증가로 2026년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가 계속 상향되는 흐름입니다. 파운드리(Foundry)란 반도체 설계만 하는 팹리스(Fabless) 기업의 칩을 위탁받아 생산하는 사업으로, 고객사 다변화가 이뤄지면 안정적인 수익 기반이 됩니다. 제가 직접 분기 실적 발표 자료를 들여다봤을 때, 이 부분의 개선세가 숫자로 명확히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또한 한국거래소와 금융당국이 주도하는 기업 밸류업(Value-up) 프로그램 기조에 따라 삼성전자를 포함한 주요 기업들이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자사주 소각이란 회사가 자기 주식을 사들인 뒤 없애버리는 것으로,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들면 주당순이익(EPS)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를 해소하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실제로 진행 중이라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런 구조적 불안 요소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레버리지투자는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외국인 순매도가 이어지고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선 상태에서 단기 급등 구간을 따라가다가는 작은 악재에도 크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 아니라 충분히 예측 가능한 리스크입니다.
저는 실적이 무너진 게 아니라 외부 불안 요소 때문에 단기 조정이 오는 구간을 오히려 기회로 보고 분할 매수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추격 매수보다 기다림이 더 유리한 국면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금 코스피가 견고한 실적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과도한 집중 투자와 채권 시장 불안, 높은 환율이라는 변수가 해소되지 않는 한 변동성은 언제든 커질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리스크 요인을 직시하면서, 실적이 뒷받침되는 반도체 중심 포지션을 조정장에서 차곡차곡 쌓아가는 방식이 현실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하시기 바랍니다.